HATI  리삼화  박하  Sharon  Nuki  이현강  G-in   
[콘서트] 비틀즈 헌정 공연〈The Beatles〉 2010-02-25 18:52 | HIT : 228


공  연  장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시간 : 2010년 4월 13일(화) 오후 7시30분

관람등급 : 8세미만입장불가

주      최 : 크레디아

문      의 : 1577-5266

가      격 : R석 100,000원   S석 80,000원   A석 50,000원   B석 30,000원   

"정말 최고였다, 공연을 보며 동지들과 함께했던 옛날이 떠올랐다..."
비틀즈 제작자, 조지 마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팝의 전설 ‘비틀즈’의 NO.1 트리뷰트 밴드 트위스트&샤우트가 내한합니다. 카피 밴드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 OPUS3의 아티스트인 트위스트 & 샤우트는 단순한 카피밴드를 넘어 진정으로 비틀즈의 음악을 이해하고 연주할 줄 아는 밴드입니다. 그들의 음악은 비틀즈가 왜 역사상 가장 사랑 받고 존경 받는 밴드인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비틀즈의 초기 히트곡부터「애비 로드」앨범 수록곡에 달하기 까지 비틀즈 곡을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순수주의자라도 비틀즈 팬이라면 반해 버릴 수 밖에 없는 트위스트 & 샤우트의 공연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BIOGRAPHY


토니 키쉬맨 (베이스 기타, 피아노로, 보컬) | 폴 매카트니
배우, 가수, 그리고 음악가, 토니 키쉬맨은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트위스트 앤
샤우트의 프로듀서이다. 토니는 스타로서 브로드 웨이에 히트 친 Beatlemania(배틀매니아)에 국내 및 국제 투어에 6 년간 출연했다.
"토니 키쉬맨은 폴 매카트니의 일부분 같다 ..."롱 아일랜드 어드밴스는 축복받은 뛰어난 어린 음악가의 모습이나 목소리까지, 최고의 사랑을 받는 비틀즈와 닮은 꼴이라고 묘사했다. 토니와 공동작업자 짐 오웬은 함께 매우 성공한 비틀즈의 교향곡 쇼로 널리 알려진 미스터리 투어를 통해 좋은 호평을 받으며 미국과 유럽 전역 순회 콘서트 홀을 장식하고 있다. 토니는 또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폴 매카트니의 음악을 연주하는 라이브 앤 렛 다이를 통해 발굴되고 스타로 발돋움했다. 키쉬맨은 매카트니 세계 최고의 닮은 꼴인 “비틀매니악스”로 불린다.
그는 공연에서 그의 수상 음악을 근래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밴드인 비틀즈에게 헌사 했다, 그는 그들의 음악을 가져오고 비틀즈의 마법을 새로운 세대에게 가져왔다. 토니는 RCA레코드와 머큐리의 음반들을 녹음하고 있다.

짐 오웬 (리듬 기타, 피아노로, 보컬) | 존 레논
가수 / 편곡가 / 음악가, 짐 오웬은 16 살 때 이미, 비틀즈의 트리뷰트밴드에서 처음으로 전문적인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18 살이 됐을 때, 그는 비틀매니아를 통해 다양하게 제작된 국제적인 투어로 일본, 한국 중국, 캐나다, 멕시코, 남미, 콘서트 홀을 비롯 경기장 및 전세계 극장에서 자신의 비틀즈 트리뷰트 공연을 펼쳤다.
트위스트 &
샤우트에서 자신의 역할뿐만 아니라, 공동작업자 토니와 함께 매우 성공한 비틀즈의 교향곡 쇼인 미스터리 투어, 폴 매카트니의 음악을 연주하는 라이브 앤 렛 다이에 출연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프로듀서와 밴드의 리더로서의 자신의 권한과 자신의 꿈의 실현을 최고의 음악과 공연들 통해 대중과 함께하고 있다.
짐 오웬은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 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6살에 피아노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각종 피아노 경연 대회 수상으로 10 대를 보냈다. 그는 8 살 때, 처음 비틀즈의 음악을 듣고 기타연주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존 브로스넌 (리드 기타, 보컬) | 조지 해리슨
존 런던출신의 음악가이자 작곡가이다. 그는 멜버른 국립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음악가로서 그의 시작은, 향후 10 년 오리지널및 커버 밴드에서 연주하기 전까지, 극장 오케스트라 석에서의 공연이었다.
존은 호주 차트에서 “The Corporation”으로 10위를 리디아 프라이스와의 합작으로 빌보드 100위 안에 들었다.
그는 2000 년부터 투어에서 조지 해리슨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로 전 세계에 걸쳐 여러 개의 비틀즈 트리뷰트 공연에 참여했다.

크리스 카밀리 (드럼, 보컬) | 링고 스타
뉴욕 롱 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랐다, 크리스 카밀리는 어린 시절 비틀즈의 레코드를 듣고, 링고에 영감을 받아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피터 누엔(헤르만의 헤르밋
페임), 배드핑거, 몽키즈의 미키 돌랜즈, 조 웰시, 그리고 다른 비틀즈 시대의 밴드 등 유명한 클래식 록 투어에 연주자로서 참여했다.

QUOTATION

“...a high goose-bump quotient...the crowd stood and bellowed for more."
The Los Angeles Times
"... 소름 끼칠 정도였다…관중들은 일어서서 연호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Never has the music of The Beatles sounded as good as this night with the live orchestra."
Newport News
" 라이브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오늘 밤처럼, 이렇게 비틀즈 음악에 비견할만한 음악은 없었다." 뉴포트 뉴스

“…a must see for any Beatles fans…” - Indianapolis Woman
"... 비틀즈의 어떤 팬이든 꼭 봐야만 하는 공연..." 인디애나폴리스 우먼

“A-1 performance! I really enjoyed it. It really brought back memories…”

Neil Diamond
"최고의 공연이었다! 정말 즐거웠다. 정말 예전 기억을 돌려준 듯 했다.... "
닐 다이아몬드

“You guys are really great…I couldn’t believe my eyes and ears…”
Alice Cooper
"정말 대단하다...난 내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앨리스 쿠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비틀즈의 노래는?

2009년 MBC 라디오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비틀즈의 명곡 9곡을 선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해, 8월 31일부터 한곡 씩 공개했다. 1위로는 ‘Let It Be’가 선정되었다.
1. Let it be   
2. Hey Jude   
3. Yesterday   
4. I will   
5. All you need is love   
6. I want to hold your hand   
7. Ob-La-Di, Ob-La-Da   
8. Come together   
9. Across the universe 

비틀즈의 역사

*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비틀즈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와 조화를 향한 열정, 말하자면 음악에 대한 자연적 '감성'에 무게가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음악은 감성이 지성을 만든다. 비틀즈가 그런 그룹이다.

비틀즈는 바로 피와 땀으로 세계정복의 열매와 천재라는 칭송을 획득했다. 그들의 성공은 천재성 아닌 가혹한 고행의 결과물이다. 천재성도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것이다. 결코 하늘이 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국 리버풀에서 40년에 태어난 존 레논(John Lennon, 기타)과 42년생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기타)가 만난 것은 1957년. 애초에는 1943년생으로 막내인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기타), 40년생 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ewart Sutcliffe, 베이스)와 41년생 피트 베스트(Pete Best, 드럼)와 함께 그룹을 짰다.

‘쿼리멘’ ‘자니 앤 더 문독스’ ‘레인보우스’ ‘실버 비틀즈’를 거쳐 가장 멋진 밴드명이라고 할 비틀즈라는 이름이 확정된 것은 1960년. 이듬해 4월 존 레논 영혼의 친구인 서트클리프가 그룹을 떠났고(뇌출혈로 62년 사망) 그로 인해 베이스 자리는 폴 매카트니가 맡게 된다. 그들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과 음반 및 매니저 계약을 체결하고 난 뒤인 1962년 8월, 드러머 피트 베스트는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스’에서 활동하던 링고 스타로 바뀌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정보나열이 아니다. 그룹의 태동과 형성기만으로도 그들이 1964년 세계를 휘몰아치기 전까지 최소 5-6년간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밑바닥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혹독한 무명의 훈련기를 거쳤으며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는 레코드사마다 ‘시절에 맞지 않는 음악’ 이유로 그들을 퇴짜 놓았다. 그리하여 당시 최고 레코드사인 데카(Decca)가 눈앞에서 비틀즈를 놓친 것은 훗날 ‘20세기의 최대 실수’의 하나로 꼽힌다.

비틀즈는 그들이 꽃을 피운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호시절을 타고 졸속으로 결성된 다른 그룹들과는 종이 달랐다. 그들은 그 동안 무수한 오디션 실패와 해외 투어로 연주력을 다졌으며 오로지 세계정복이란 목표를 위해 눈물과 배고픔을 삼켰다. 정말 그들 말대로 손이 아프도록 기타를 쳤고 목이 터져라 노래했다.

영국의 리버풀 캐번과 저 멀리 독일 함부르크 클럽을 왕래하며 연주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구촌 석권을 위한 숨가쁜 열정이자 가혹한 훈련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리버풀에서 길러졌지만 함부르크에서 성장했다”는 존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영화 “백비트”에 잘 묘사되었듯 그들은 이곳 클럽무대에서 댄서들 뒤에서 반주를 했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집단 기식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당시 서구권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열심히도 챙겼다. 모르는 게 없었다. 1950년대 블루스와 로커빌리, 모타운 R&B, 틴 팬 앨리 팝, 라틴 음악 등 갖가지 계열의 곡들을 골라 커버 연주했다.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Twist And Shout>, 스모키 로빈슨의 <You Really Got A Hold On Me>, 바레타 스트롱의 <Money, That's What I Want>, 캐롤 킹의 <Chains>, 리틀 리처드의 <Long Tall Sally>, 척 베리의 <Rock And Roll Music> 등은 그 파편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흡수해 자신들의 독창적 스타일로 빚어낼 줄 알았다. 거기서 <Love Me Do>가, <From Me To You>가, <A Hard Day's Night>가, <I Feel Fine>이 나왔다.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 길러낸 창조성, 이를테면 노력에 의해 축적된 내공의 폭발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남들 곡의 템포와 볼륨을 업그레이드했고 그 작업을 통해 이후 그들만의 코드 진행감각 즉 독자적 화성을 찾아낸 것이었다.

비평가 그렉 쇼(Greg Shaw)는 말한다. “비틀즈는 단지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초의 그리고 첫째가는 로큰롤 팬이었다. 그리고 바로 음악에 대한 지식과 헌신이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감성에서 지성으로, 그리고 그 두 가지의 환상적 퓨전!

비틀즈의 무명시절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초기 곡이라 할 <Love Me Do>에서 <Help!> 까지는 이 출발 이전의 워밍업 시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실상 비틀즈 초기 작품은 이 준비기를 떼어놓고는 논할 수도 없다. 하긴 연습 없이 실전을 잘 치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비틀즈는 나중 실전을 연습처럼 해야한다는 진리도 잊지 않았다.

** 지구촌 전체를 손에 넣다

1964년 2월7일 영국의 더벅머리 네 남자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순간, 세계의 음악역사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비틀매니아'의 시작. 그것은 이후 음악의 중심이 '젊은이들'과 '대중음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어른과 고전음악은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비틀즈가 먼저 1963년 영국을 뒤흔들었을 때 그 광풍은 당시 내각을 발칵 뒤집어놓은 성추문 이른바 ‘프로퓨모 스캔들'도 잠재워버렸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정치 판에 관심을 깡그리 잊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온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비틀즈가 미국 땅에 상륙하자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전국이 들썩들썩했다. 비틀즈는 이처럼 정치 사회적 회오리마저 제압하는 엄청난 팝 폭발(pop explosion) 현상이었다.

비틀즈 초기 음악은 한마디로 경쾌한 로큰롤이었다. 1950년대 미국 로큰롤에 영국 특유의 셔플 리듬과 보컬 하모니를 덧입힌 스타일로, 강했으되 느낌은 밝았다. 기본 3코드를 이용한 로큰롤만의 단순한 진행이었지만 1950년대의 로큰롤보다는 훨씬 템포도 빠르고 볼륨도 컸다. 본격적인 밴드중심 로큰롤의 개막이었다. 지구촌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그들처럼 기타를 치고 드럼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비틀매니아 시대의 음악은 이처럼 '로큰롤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영국에서 1963년 <From Me To You>는 7주간 1위에 오르면서 당시로 볼 때는 경이적인 65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것은 비틀즈가 이후 발표한 11장의 싱글이 모두 정상에 오르는 ‘넘버원 퍼레이드'의 서막이었다. 다음 싱글 <She Loves You>는 선(先)주문만도 31만장에 달하면서 영국에서만 160만장이 팔려나갔다.

이 기록은 폴 맥카트니의 1977년 <Mull Of Kintyre>에 의해 깨질 때까지 무려 14년 간 '영국 최고판매의 싱글' 타이틀을 지켰다. 같은 해 12월 발표한 <I Want To Hold Your Hand>는 <She Loves You>로부터 1위 자리를 승계하며 선(先)주문 94만장에 총 1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들의 꿈이던 미국정복을 이룩해낸 곡도 바로 이 노래였다. 이 곡은 전미 차트 7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1964년 미국에서 <Can't Buy Me Love>는 판매 신기원을 이룩했다. 선주문 170만장에 발매와 동시에 모두 200만장이 팔려나간 것이다(영국에서도 첫 주 122만6천장). 굳이 판매고를 거듭 언급하는 것은 비틀즈 광풍(狂風)을 설명하기에 그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공할 행진은 직접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 <A Hard Day's Night>와 <I Feel Fine>, 그리고 두 번째 영화 “Help!”에 삽입된 2곡 <Ticket To Ride>와 타이틀곡 <Help!>로 이어진다. 이 때까지 넘버원 싱글 가운데 느린 곡은 하나도 없을 만큼 그들은 당시 세대와 호흡하는 로큰롤의 대중성을 신뢰했다. <Help!> 만 해도 존 레논은 “원래 느린 곡조로 썼으나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 빠르게 불렀다"고 밝혔다.

그 속도감을 갖춘 로큰롤에 소녀들을 미치게 한 곡 중간의 함성 ‘Yeah Yeah Yeah'(비틀즈 시대의 상징어가 됐다)으로 그들은 영국의 침공을 견인하며 지구촌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성공하기 전 그들이 주로 커버했던 곡을 골라 녹음한 폴 매카트니의 1999년 앨범 [Run Devil Run]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I Got Stung>를 부른 경위에 대한 폴의 설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엘비스 레퍼토리는 아니었으나 도입 부분이 맘에 들었고 난 엘비스보다 조금은 더 난폭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터뜨리고 질러대는 로큰롤을 가지고 그들은 마침내 '최강의 로큰롤밴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비틀즈는 더 나아가 '최강의 팝 밴드'가 되고자 했다. 그 비상을 알리듯 1965년 가을 때마침 현악 반주의 <Yesterday>가 나왔다.

*** 거리의 록을 전당의 예술로
엄밀히 말해서 로큰롤은 거리의 젊은이들 음악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 그것이 등장했을 때 그것은 어른들이 듣는 이전의 스윙 재즈와 스탠더드 팝 발라드와 완전히 ‘분리와 독립'의 선을 그었다. 비틀즈도 초기 로큰롤의 영웅들인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할리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로큰롤(상기했듯 좀 더 강하긴 했지만)을 구사했다.

초기에 그들은 기타로 곡을 썼고 그래서 그 때의 곡들은 업 비트의 장조계열 곡들이었다. 그러나 ‘제5의 비틀'이라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을 만나면서, 그로부터 피아노의 미학을 터득하면서 그들은 느린 단조계열의 발라드 팝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거리의 록은 완전히 근사한 전당의 예술로 ‘신분상승'했다. 그것을 상징하는 곡이 <Yesterday>와 <Eleanor Rigby> 그리고 앨범 [Rubber Soul],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다.

가사 또한 바뀌었다. 그들의 신나는 로큰롤에 담긴 노랫말이라곤 고작 젊은 남녀의 풋사랑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한마디로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내용이 주종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포크와 통기타의 영웅 밥 딜런(Bob Dylan)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가사의 중력을 절감했다.

특히 존 레논에게 이 부분의 충격은 절대적이었다. 갑자기 비틀즈 노래는 사랑타령에서 ‘사색과 인생'으로 바뀌어갔다. 중기의 대표적인 노래들인 <Girl>, <In My Life>, <Eleanor Rigby> 는 이전 노래와는 확실히 깊이가 달랐다. 비틀즈는 싱글 중심이 아닌 앨범 중심으로 음악작업의 축을 전환했다. 곡도 커버 버전은 완전히 걷어치우고 철저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콤비(더러 조지 해리슨)의 자작으로 앨범을 채우기 시작했다. 평자들이나 대중들 할 것 없이 일제히 비틀즈의 최고 명반으로 중기작품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런 저간의 상황이 있다.

물론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도 우수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영국인들 2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권위 있는 ‘버진(Virgin) 올 타임 톱 1000 앨범'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이 리서치에서 [Revolver]가 당당 1위를 차지했으며 [Sgt. Pepper's…]는 3위, [Rubber Soul]은 34위에 올랐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시 미국 문화계 인사들과 히피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간 싸이키델릭(Psychedelic) 풍향이다. 환각과 약물로 이미지화된 이 흐름은 기존의 지배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기를 들고 문화적 대안(代案)을 찾고자 한 일종의 '문화운동'이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의식확장을 위해 약물 LSD를 실험했고 동양종교를 탐색했고 갖가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항의의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적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평화'였다.

버진 조사에서 1등을 뺏겼지만 여전히 팝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1967년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바로 싸이키델릭과 히피의 ‘안티' 성향을 농축해낸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다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타임에 커버로 두 번 등장한 대중가수는 비틀즈 밖에 없다).
중기의 포크와 싸이키델릭 시대를 통해 비틀즈는 ‘자기 음악중심'을 확립했다. 단순한 성공공식으로 일관하면서 실험을 배제하는 여타 그룹들과는 달랐다. 초기에 그토록 흔하던 히트싱글 발표도 가급적 자제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음악의, 소위 얼터너티브를 찾아 실험하고 탐구했다. 오늘날에도 비틀즈가 최강의 그룹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시기의 ‘음악혁명'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비틀즈의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그룹의 결속력의 약화라는 음지가 존재했다. 4인 각자의 개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서적으로 하나의 그룹 아닌 ‘존 폴 조지 링고'로 흩어지면서 비틀즈는 말기를 맞는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명반의 생산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 미래의 기약-4분의 4는 역시 하나!
1968년 그룹이 자신들의 음반사 애플(Apple)을 설립했을 때, 그리고 애플의 첫 싱글 <Hey Jude>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비틀즈의 웅대한 새 출발은 이상하게도 그룹의 결속력 와해로 이어졌다. 비틀즈라는 우산 아래 뭉쳤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독자 영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그룹을 대표하던 존은 비틀즈 아닌 필생의 동반자 오노 요코와의 관계에 빠져 들어갔으며, 폴은 그룹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넷 가운데 단연 최강자로, 실세로 솟아났다. 존과 폴 간의 균형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이러한 ‘헤쳐' 상황은 비틀즈를 ‘존과 폴의 그룹'에서 ‘폴 휘하의 그룹'으로 만들었다. 조지 역시 자신의 음악세계에 액센트를 두기 시작했고 곡을 쓰지 못했던 링고도 마침내 <Don't Pass Me By>나 <Octopus's Garden>과 같은 곡을 써내면서 자신감을 획득했다.

애플사에서 낸 첫 앨범 [The Beatles](일명 화이트 앨범)는 불가피하게 ‘한지붕 네가족'의 앨범이 되어 나왔다. 자신이 쓴 곡을 녹음할 때 다른 멤버들은 그룹동료가 아니라 거의 세션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비틀즈의 재정문제를 관장하는 사업고문 발탁을 놓고 존 조지 링고와 폴 간의 입장차이가 불거지면서 멤버들간의 갈등도 노출되었다. 존과 폴은 모든 면에서, 가령 예를 들면 결혼날짜와 장소와 같은 문제에서도 사사건건 경쟁적 심리전을 전개했다.

말기에서 비틀즈가 차지한 차트 넘버원 곡들은 존의 <The Ballad Of John & Yoko>와 <Come Together>, 조지의 <Something>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폴이 주도적으로 쓴 곡이었다. 폴의 작곡 감각은 이후에도 접하기 어려울 만큼 이 시기에 환상의 절정을 과시했다. 해산 직전에 나온 <Let It Be>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드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곡들은 비틀즈 작품이기보다는 폴의 솔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폴의 천재성은 말기의 앨범 [The White Album], [Abbey Road]에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굳이 싱글이 아니었어도 전자의 <Ob-la-di Ob-la-da>, <Martha My Dear>, <I Will>, 후자에서는 <You Never Give Your Money>, <Golden Slumber>,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등 그가 주조한 곡들은 어떤 싱글보다도 사랑을 받았다. 기습적인 비틀즈 해산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폴이었다.
이 전설의 4인들은 해산 후에도 각각의 길을 걸으면서 누구 할 것 없이 1970년대의 어떤 싱어 송 라이터나 팝 스타들보다 굵직한 행보를 보였다. 네 사람 모두 차트 넘버원 곡을 기록했다. 그룹 출신으로 솔로활동에서 멤버 모두가 1위 곡을 가진 그룹은 비틀즈 밖에 없고 이는 앞으로도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윙스(Wings)라는 그룹을 만든 폴의 히트행진은 비틀즈 업적을 거의 재현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존 폴 조지 링고를 아무리 개별적으로 기억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비틀즈라는 집합체로 기억한다. 말기 이후가 ‘4분의 4'이었을지언정 대중의 뇌리에는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임은 비틀즈 재결합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관측을 깨고 1995년 폴 조지 링고가 투합해 존의 노래 <Free As A Bird>와 <Real Love>를 만들어 내놓았을 때 다시금 입증되었다. 여기서 링고 스타의 비틀즈론(論)을 들어보자.

“우린 신비로웠고 그것은 텔레파시였다. 우리가 녹음실에서 작업했을 때…그걸 묘사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린 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였다. 우리 모두의 마음은 언제나 동시에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비틀즈는 세월이 흘러도 역사에 묻히지 않고, 갈수록 위대성과 가치가 증대한다. 미국 브라질 쿠바 일본 그리고 한국을 가리지 않고 [1]이 전 세계적으로 판매열풍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뉴 밀레니엄 첫 스타마저 비틀즈의 몫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존 레논은 1980년 팬의 총탄에 피살되었다. 그리고 2001년 조지 해리슨도 세상을 떠났다. 조지가 사망하면서 ‘타임’지가 기술한 것처럼 이제 비틀즈의 재결합에 대한 팬들의 소망은 사실상 끝이 났다.

두 사람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4인의 음악마법’에는 유통기한이란 게 없다. 1960년과 2003년 사이의 40년 이상의 세월의 간극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비틀즈는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슈퍼파워이며 앞으로도 위력을 발할 것이다. 그들은 불로(不老) 불사(不死) 불패(不敗)의 그룹이다.
임진모(www.izm.co.kr)




1494 콘서트 김범수 7집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 - 서울  4
1493 콘서트 정엽 싱글 발매 기념 콘서트  3
1492 콘서트 성시경 콘서트 - 2년 만에, 그대는…  2
1491 콘서트 플라워 콘서트<秋樂>- 서울  6
1490 새앨범 [발매] The Finnn의 첫 정규앨범 'BeatlesOverZeppelin' 대발매!  9
1489 콘서트 GREAT MEET 2010 EVE&AURA (FROM JAPAN)  15
1488 콘서트 YELLOW MONSTERS 1ST CONCERT[FREAK SHOW]  13
1487 콘서트 장사익소리판 ‘역(驛)’  16
1486 콘서트 SEOUL SOUL FESTIVAL 2010 (서울 소울 페스티벌 2010)  15
1485 새앨범 내귀에 도청장치, 4년만의 새앨범 [Observation] 발매  11
1484 콘서트 베이시스트 안소니 잭슨 내한공연  17
1483 콘서트 25주년기념 이승철 전국투어 콘서트 “오케스트 ROCK” - 군산  20
1482 새앨범 TRANSFIXION 3.5집 대발매~!!!!!!  15
1481 콘서트 내귀에 도청장치 4집발매 단독콘서트  17
1480 콘서트 2010 LIL JON ASIA TOUR Vol.1<LIL JON LIVE IN SEOUL>  16
1479 콘서트 CJ아지트 튠업:포헤르츠&브릭슬리퍼 라이브(feat. 김창완밴드)  21
1478 콘서트 상상밴드 리더 쇼기 첫번째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별과 너의 파노라마〉  15
1477 콘서트 김사랑 콘서트 “Acoustic Cruise”  18
1476 콘서트 휘성 콘서트 RealSlow is Back  15
1475 새앨범 이지라이더 정규 1집 [Bold Brother]  15
  1  2  3  4  5  6